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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회식때 참치먹어서 여운이 길게남아 참치에 대해 알아봤는데 내용 공유드립니다~

Intro

최고급 오마카세 스시 카운터, 셰프의 섬세한 손길 위에서 영롱한 루비 빛을 뽐내는 참치 한 점을 상상해 보세요. 이 작은 생선 살 한 점은 사실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광활한 대양을 지배하는 포식자의 진화, 복잡한 생화학의 신비, 그리고 수백 년에 걸친 요리 예술이 응축된 결정체이죠.

참치집 요리사

어떤 부위는 혀에 닿는 순간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리고, 어떤 부위는 소고기처럼 탄탄하고 깊은 육향을 선사합니다. 같은 생선에서 어째서 이렇게 드라마틱한 차이가 나는 걸까요?

오늘, 미식의 정점이라 불리는 참치의 세계를 과학의 눈으로 해부해 보겠습니다. 참치 부위별 맛과 식감의 비밀, 그 여정을 함께 떠나보시죠!

1장. 일단 부위부터 알고 먹자! 참치 맛집 필수 용어 가이드

참치 회를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용어부터 알아야 합니다. 헷갈리는 일본어와 한국어 명칭, 이 기회에 확실히 정리해 보세요.

가장 중요한 원칙은 머리와 배 쪽에 가까울수록 기름지고(고급!), 꼬리 쪽으로 갈수록 담백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에너지를 뱃살에 저장하는 참치의 생리적 특성 때문이죠.

  • 도로(トロ): 단순히 '뱃살'이 아닙니다. 지방이 풍부한 부위를 총칭하는 말이죠. 뱃살인 오도로(대뱃살), **주도로(중뱃살)**는 물론, 등 쪽 지방 부위인 **세도로(등지살)**도 '도로'에 속합니다.
  • 아카미(赤身): '붉은 살'이라는 뜻으로,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속살을 의미합니다. 참치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위죠.

아래 표 하나면 당신도 '참치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일본어 명칭 (로마자) 한국어  명칭위치 & 특징
가마도로 (Kamatoro) 가마살/목살 아가미 뒤. 소고기 와규급 마블링! 입에서 녹는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공존하는 최고의 부위.
오도로 (Otoro) 대뱃살 배 앞쪽. 입에 넣자마자 사라지는 마법. 극강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의 제왕.
주도로 (Chutoro) 중뱃살 배 옆구리. 지방의 고소함과 속살의 담백함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가장 인기 있는 부위.
스나즈리 (Sunazuri) 배꼽살 뱃살 가장 아래. 오독오독한 특유의 식감이 일품! 고소한 지방과 씹는 맛의 조화.
아카미 (Akami) 속살/적신 등 중앙. 지방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맛. 섬세한 산미와 깊은 감칠맛이 매력.
세도로 (Setoro) 등지살 등 껍질 쪽. 등살의 담백함과 뱃살의 고소함을 함께 가진 '등살 버전 주도로'.
호호니쿠 (Hohoniku) 뽈살 양쪽 볼. 지방은 거의 없고 아주 쫄깃한 식감. 소고기 육사시미를 연상시키는 맛.
나카오치 (Nakaochi) 갈비살 뼈 사이 살. 다진 육회처럼 부드러운 식감. '네기토로'의 주재료.
 

2장. 식감의 비밀: 대양의 마라토너 vs 단거리 스프린터

입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 쫄깃함의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바로 참치의 '근육' 에 그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참치는 두 종류의 근육을 가진, 고도로 전문화된 운동선수와 같습니다.

붉은 근육 (지근): 대양을 건너는 마라토너 🏃

  • 역할: 대양을 쉬지 않고 헤엄치는 '지구력' 근육입니다.
  • 특징: 산소를 끊임없이 사용해야 해서, 산소 저장 단백질인 미오글로빈이 풍부합니다. 이 미오글로빈 때문에 살이 선명한 붉은색을 띠죠. 근섬유가 가늘고 조밀해 지방이 거의 없습니다.
  • 결과: 단단하고 탄력 있는 식감. 바로 **아카미(속살)**의 특징입니다.

흰 근육 (속근): 먹이를 낚아채는 스프린터 ⚡

  • 역할: 먹이를 낚아채거나 적으로부터 도망칠 때 쓰는 '순발력' 근육입니다.
  • 특징: 짧고 폭발적인 힘을 내기 때문에 미오글로빈이 거의 필요 없어 창백한 흰색을 띱니다. 근섬유는 굵고 조직의 밀도가 낮으며, 그 사이사이에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한 지방이 가득합니다.
  • 결과: 입에서 녹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 **오도로(대뱃살)**의 황홀한 질감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참치를 맛보는 것은, **쉬지 않는 엔진(아카미)**과 **에너지 저장고(도로)**라는, 완벽한 진화의 설계를 감각적으로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3장. 풍미의 정체: 고소함, 감칠맛, 산미의 화학

참치의 맛은 단순히 '기름지다', '담백하다'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정교한 화학적 합주가 펼쳐지고 있죠.

'녹아내림'의 화학: 오메가-3의 마법

오도로가 "입에서 녹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참치 뱃살에 풍부한 **오메가-3 지방산(DHA, EPA)**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지방보다 녹는점이 훨씬 낮습니다. 우리 체온(약 37°C) 정도의 온도인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고체였던 지방이 액체로 변하며, 그 안에 응축되어 있던 풍미 분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녹는다'고 느끼는 현상의 과학적 실체입니다.

아카미의 반전 매력: 감칠맛과 산미

지방이 거의 없는 아카미는 어떻게 그렇게 깊은 맛을 낼까요?

  • 산미(酸味, Sanmi)의 원천, 미오글로빈: 아카미의 선명한 붉은색을 내는 미오글로빈 속 철(heme) 성분은 '피 맛'과는 다른, 아주 깨끗하고 상쾌한 산미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미식가들이 높이 평가하는 참치 본연의 '순수한 맛'입니다.
  • 감칠맛 폭탄, 시너지 효과: 참치 살에는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IMP)**이 매우 풍부합니다. 반면, 또 다른 감칠맛 성분인 글루탐산은 적죠. 여기서 마법이 일어납니다. 글루탐산이 풍부한 간장에 아카미를 찍어 먹으면? 생선 속 이노신산과 간장 속 글루탐산이 만나, 각각을 따로 먹었을 때보다 감칠맛이 7~8배나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아카미와 간장이 환상의 궁합인 데에는 이런 과학적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4장. 아는 만큼 맛있다! 참치 100% 즐기는 미식가 꿀팁

이제 당신은 참치의 과학을 아는 미식가입니다. 이 지식을 활용해 참치의 맛을 극대화해 보세요.

1. 먹는 순서는 '담백함 → 기름짐'으로!

코스의 시작은 아카미, 마무리는 오도로로 하세요. 기름진 오도로를 먼저 먹으면 그 강렬한 지방 맛이 혀를 코팅해버려, 뒤에 먹는 아카미의 섬세하고 복합적인 맛(산미, 감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깔끔한 아카미로 시작해 점차 강렬한 맛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2. 최고의 파트너를 찾아라: 맛의 시너지

  • 아카미 + 간장: 위에서 설명한 '감칠맛 시너지'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 도로 + 와사비/사케: 와사비의 톡 쏘는 맛과 깔끔한 사케는 도로의 풍부한 지방 맛을 상쾌하게 정리해 주어, 느끼함 없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돕습니다.
  • 뽈살 + 참기름/소금: 소고기 육사시미와 비슷한 식감의 뽈살은 참기름과 소금으로 그 '육고기' 같은 특성을 살려주는 것이 잘 어울립니다.
  • 김(海苔)은 신중하게: 고급 참치 집에서 김을 잘 주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김 자체의 풍미가 강해, 비싸고 섬세한 참치 본연의 맛을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보이지 않는 차이: 숙성과 칼질

셰프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맛을 좌우합니다. 적절한 숙성은 효소 작용을 통해 감칠맛을 끌어올리고 육질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또한, 근섬유의 결 반대 방향으로 써는 칼질은 살을 더욱 부드럽게 느끼게 해주는 장인의 기술이죠.

결론: 맛볼 수 있는 과학, 참치

이제 참치 한 점이 다르게 보이지 않으신가요?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생선 살이 아닙니다. 차가운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저온에서도 굳지 않는 지방), 대양을 횡단하는 경이로운 지구력(미오글로빈과 이노신산)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한 점의 참치 뒤에 숨겨진 과학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의 정교한 설계와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간의 지혜에 감탄하게 됩니다. 다음 스시 카운터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음미하며, 완벽한 포식자의 진화 역사가 응축된, '맛볼 수 있는 과학' 그 자체를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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